1970년대 말, 이소바는 성공이라는 파도의 정점에 올라 있었습니다. 자체 생산 능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마치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기간이 매우 성공적일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품을 수출하는데 있어서 기술적인 우수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이소바는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해 10년의 격동기를 겪어야 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이 기간은 고객들의 요구에 더 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며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957년 - 2007년

1957 - 2007

반 세기도 채 되지 않아 거의 1백 개 정도의 TEL 생산 라인들이 전 세계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기술은 전 대륙에 확산되었고, 동시에 라이선스 소유권을 두고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습니다.





 


1982년

1982

생고뱅 그룹은 국영화되어 12월에는 새로운 경영진이 맡게 되었습니다. Eric d’Hautefeuille는 단열재 사업부를 맡아 고객의 요구사항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84년

1984

1984년 5월 12일, 생고뱅은 한국의 유리 제조업체인 한국유리공업 주식회사(Hankuk Glass Industries)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사업 영역을 아시아 지역으로 계속 확대하였고, 1986년에는 인천에 그라스울 공장을 오픈하였습니다. 이어 2004년에는 충남 당진에도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였습니다.





 

1986년

1986

Saint-Gobain-Pont-à-Mousson의 민간화 사업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개별 주주가 많았지만, “핵심 집단(hard core)”은 국영화 이전 상태를 유지하였으며, 장루이 베파(Jean-Louis Beffa)가 1월 23일 그룹의 총수로 임명되었습니다.




 



 

1986년 - 2000년

1986 - 2000

IT, 물류, 팔레트 작업에 걸쳐 고객 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진 시기입니다. 생고뱅이 특허를 받은 최초의 혁신적인 포장인 Compact의 후계자인 멀티팩(Multipack)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향후 표준 규격 팔레트 위에서 모든 단열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소바의 물류 시스템과 고객은 시장 선점 요인을 하나 더 획득하였습니다.